** 알아주지 않는 시간에도, 우리가 해온 일은 쌓인다

제가 힘들 때마다 늘 읽는 글입니다.

폴란드에서 냉담한 답변을 듣고 돌아오던 날에도, 오랜 시간 쌓아온 기술과 사람들의 노력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훗날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던 것도, 그동안 묵묵히 준비해 온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현재의 결과만으로 그동안의 노력까지 헛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노력은 반드시 보상받습니다.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애쓰신 분들께, 그리고 제게 이 글을 바칩니다.

그날의 귀국, 판도가 바뀌었습니다

국제협력관 유럽협력담당관 김형철 사무관

개청 20주년을 맞이한 지금, 제가 방위사업청에 몸담아온 지난 20년의 시간은 곧 우리 기관의 성장과 궤를 함께합니다. 그 긴 시간의 결을 따라오다 보면 어느 순간은 단순한 ‘업무’라는 말로는 다 담기지 않는 울림으로 남곤 합니다. 최근 폴란드에서 기록한 대규모 방산 수출 성과도 그랬습니다. 그것은 한 건의 실적을 넘어 제게 사명감을 다시 일깨워 준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이 ‘우리 모두의 사업이며 국가적 자산’인 폴란드 방산 수출이 어떻게 대한민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지를 제 경험을 통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022년 2월, 저를 포함한 한국 측 대표단은 폴란드를 방문해 K2전차를 홍보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폴란드 측은 이미 미국과 M1 에이브람스 도입 계약을 체결한 상황이었고, K2전차에 대한 언급조차 자제해 달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대표단은 최소한의 규모라도 K2전차를 운용해 본다면 그 우수성을 직접 확인할 수 있고, 폴란드의 전력 증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냉담했습니다. 결국 우리 측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국이 가장 단기간에 최우선 납품을 보장하겠다”라는 약속만 남긴 채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날, 귀국과 동시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발생했습니다. 그 순간부터 판도는 극적으로 변화했습니다. 미국이 2030년 이후에나 전차 공급이 가능한 상황에서, 폴란드는 한국에 K2전차는 물론 K9자주포와 FA-50 경공격기까지 단기간에 납품할 수 있는지를 긴급히 문의해 왔습니다. 말 그대로 전환점이 찾아온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폴란드 대표단이 방한해 무기체계를 실사했고, 그해 8월 종전 사상 최대 규모의 계약이 체결됐습니다. 그리고 연말에는 K2전차와 K9자주포가 ‘총알배송’이라 불릴 만큼 신속히 폴란드로 인도됐습니다. 자동차도 2년을 기다려야 하는데, 한국이 전차와 자주포를 그보다 빨리 납품했다는 사실에 폴란드 측은 놀라움과 감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과거 방위산업은 흔히 ‘안보를 위한 비용’으로만 인식됐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폴란드와 맺은 대규모 K2전차, K9자주포, FA-50, 천무 수출 계약은 K-방산이 단순한 비용 항목을 넘어, 국가 경제를 이끄는 새로운 미래 먹거리라는 사실을 전 세계에 선포한 이정표였습니다.

제가 폴란드 협력 업무를 수행하며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은 계약서에 서명하던 때가 아니라 그 이후 국내 현장에서 변화를 직접 목격한 순간이었습니다. 폴란드 수출 물량을 맞추기 위해 창원을 비롯한 전국 방산 공장들은 밤늦은 시간까지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대형 조립공장은 물론, 그 안에 들어가는 수만 개의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 협력업체까지도 새로운 활력이 돌고 있습니다.
방산 수출은 낙수효과가 크고 깊습니다. 무기체계 한 건의 수출은 기계·전기·전자·통신·소재 등 연관 산업 전반의 동반 성장을 촉진하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집니다. 반도체가 한 시대 대한민국 경제를 견인했다면, 이제 K-방산은 제조업 르네상스를 이끄는 ‘제2의 반도체’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든 무기가 폴란드 평원을 지키는 동안, 그 가치는 다시 우리 국민의 삶을 지탱하는 든든한 경제 버팀목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물론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낯선 환경, 복잡한 협상, 예측 불가능한 국제 정세 속에서 밤을 새우며 고민하고 결정해야 할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국익이다’라는 분명한 사명감, 그리고 우리 기술력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이제 폴란드는 단순한 수출 상대국을 넘어,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한 전략적 교두보이자 K-방산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파트너가 됐습니다.

개청 20주년을 맞이한 방위사업청은 이제 축적된 전문성과 수출을 포함한 다양한 실적을 갖춘 성숙한 국방 획득 기관으로 발전했습니다. 폴란드 수출 성과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도약의 출발점입니다. 우리 기술이 세계 평화에 기여하고, 그 결실이 다시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선순환 구조야말로 제가 방산수출 업무를 수행하는 이유이자 이 일의 진정한 가치입니다.
앞으로의 20년은 더욱 치열할 것입니다. SAFE를 통한 유럽 시장의 블록화, 글로벌 방산시장의 견제 심화, 기술경쟁 가속화 등 우리가 마주할 도전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 뒤에는 현장에서 땀 흘려 일하는 수많은 기술자와 근로자, 그리고 K-방산을 믿고 응원해 주시는 국민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K-방산의 질주. 그 여정에 국민 여러분의 따뜻한 관심과 응원이 함께하길 소망합니다. 저와 방산협력단은 앞으로도 대한민국 방위산업의 저력을 세계에 당당히 보여드릴 수 있는 성과로 보답하겠습니다.

 [Link](https://dapa-magazine.kr/page/vol146/1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