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과 부력 사이]
지금 주식시장에는 두 개의 힘이 맞서고 있다.
하나는 금리다. 주가를 아래로 당기는 중력이다. 할인율이 올라가면 미래 이익의 현재 가치가 깎인다. 성장주일수록 더 크게 눌린다.
다른 하나는 메모리 실적이다. 주가를 위로 띄우는 부력이다. 전망치가 계속 상향되고, 이익 숫자가 상상을 넘어선다.
두 힘이 모두 강하다. 그래서 주가가 불안하게 출렁인다. 어느 쪽도 완전히 이기지 못한 채 공중에서 떨고 있는 형국이다.
마이크론 실적은 부력 쪽에 힘을 실어줬다.
AI와 반도체 업황에 대한 우려가 상당 부분 불식됐다. 숫자가 그만큼 강력했다.
그런데 바로 그 강력함이 새로운 불편함을 만들었다.
매출총이익률 87%.
엔비디아가 75%다. 설계 기업이, 그것도 세계 최강의 설계 기업이 75%인데 메모리 회사가 87%를 낸다. 메모리 역사에 전례가 없는 숫자다.
많은 투자자들이 이 숫자 앞에서 멈칫한다. 이건 정상이 아니라고. 상황이 바뀌면 가차없이 꺾일 거라고.
합리적인 의심이다. 메모리는 오랫동안 그런 산업이었다.
다만 숫자의 성격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과거에도 메모리가 높은 마진을 낸 적이 있다. 그런데 그때의 고마진은 스팟 가격 급등에서 나왔다. 수요가 공급을 잠깐 초과하면서 가격이 튀었고, 그 가격이 꺾이는 순간 마진도 함께 무너졌다. 피크아웃이 점으로 나타났던 이유다.
지금은 다르다.
마이크론이 이번에 SCA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공개했다. 향후 매출의 50%까지 장기 계약으로 채우겠다는 것이다. 국내 빅2는 더 공격적이다. LTA 비중을 60~70% 수준까지 세팅하는 것이 목표다.
매출의 절반 이상이 가격과 물량이 확정된 상태라는 뜻이다.
이 구조에서는 스팟 가격이 흔들려도 이익이 즉각 무너지지 않는다. 과거 피크아웃의 메커니즘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터보퀀트 같은 메모리 효율화 기술이나, 공급사들의 물량 증가로 이익이 부러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적어도 내년까지는 그럴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 계약이 이미 묶여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역습도 마찬가지다. CXMT의 물량은 B2C 영역에 제한적이다. 그것도 해외 판매는 쉽지 않다. 특허 소송이라는 벽이 있다. 서버와 HBM 영역으로 넘어오려면 기술 격차와 법적 장벽을 동시에 넘어야 하는데, 단기간에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메모리 주가는 부진한가.
이유는 단순하다. 새로 살 수급이 많지 않다.
좋은 실적이 나와도 살 사람이 없으면 주가는 오르지 않는다. 이미 담을 사람은 다 담았다. 외국인은 단일 종목 비중 한도에 걸린다. 기관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성장률 둔화가 확인됐다. 이익의 절대 크기는 여전히 엄청나지만, 증가 속도는 꺾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시장의 관심이 바뀌었다.
이익이 얼마나 큰가에서, 이익이 얼마나 오래 가는가로.
그리고 지속성은 한 분기 실적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의 지루한 흐름은 그 시간을 보내는 과정이다.
그래서 돈은 더 직관적인 곳으로 흐른다.
소부장이다.
마이크론이 내년 캐펙스로 550억 달러를 제시했다. 올해보다 2배 많은 금액이다. 국내 빅2도 역대급 캐펙스를 단행한다. TSMC 역시 파운드리에 사상 최대 투자를 집행한다.
캐펙스는 실적 가이던스보다 정직한 신호다.
전망은 틀려도 책임질 일이 없지만, 캐펙스는 회사가 자기 돈을 거는 행위다. 되돌리기도 어렵다. 550억 달러를 쓰겠다는 건 최소 2~3년의 수요를 확신한다는 뜻이다.
말이 아니라 행동을 봐야 한다.
수급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외국인과 기관이 소부장을 무난하게 채우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빅2는 이미 비중이 가득 찼지만, 소부장은 담을 여유가 있다.
논리와 수급이 겹치는 자리. 그런 자리가 잘 흔들리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는 기억해야 한다.
지금의 캐펙스 증가가 2~3년 뒤에는 공급 과잉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소부장이 지금 받는 수혜가, 역설적으로 다음 사이클의 하락 요인을 만드는 것이다.
소부장 투자에도 시간 지평이 필요하다. 영원히 들고 갈 자산이 아니라, 증설 사이클이 도는 동안 함께 가는 자산이다.
중력과 부력 사이에서 주가는 흔들린다.
금리가 내려오고 이익의 지속성이 확인되는 순간, 부력이 이긴다. 그때까지는 이 어정쩡한 공중 부양이 계속될 것이다.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돈은 가장 확실한 곳으로 흐른다.
캐펙스는 이미 집행되기 시작했다.
-10월 1일 아침 아신 이형수
[중력과 부력 사이] 지금 주식시장에는 두 개의 힘이 맞서고 있다.
IT의 신 이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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