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과 부력 사이 낀 주가, 이제는 속도 싸움]
마이크론이 역대급 실적을 냈다. 삼성전자도 그랬다.
그런데 주가는 빠졌다.
이상한 일처럼 보이지만, 시장의 계산은 명확하다. 메모리 EPS가 정점을 찍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EPS가 반토막 난 상태를 가정하고 밸류에이션을 매겨버렸다.
왜 그런 계산을 할까. 과거에는 그게 항상 맞았기 때문이다.
메모리는 성장률이 꺾이면 성장 자체가 꺾였다. 피크아웃이 특정 시점에 점으로 찍혔고, 그 다음 분기부터 숫자가 무너졌다. 수십 년간 반복된 패턴이다.
시장은 비합리적인 게 아니다. 학습한 대로 반응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전방 시장을 보자. 메모리 수요는 결국 하이퍼스케일러 캐펙스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숫자는 매 분기 발표될 때마다 올라가고 있다. 꺾이기는커녕 가속 중이다.
토큰 가격이 42% 떨어지는 동안 사용량은 176% 늘었다. 가격을 내렸는데 더 쓴다는 건 수요가 진짜라는 뜻이다.
여기에 구조도 달라졌다.
마이크론은 9월 말 기준 26개 장기 고객 계약으로 RPO 1500억 달러를 확보했다. 한 분기 전 16개 계약 1000억 달러에서 급증한 수치다. 회계연도 전체 매출이 1332억 달러니까, 이미 체결된 계약이 1년 매출보다 크다.
고객 예치금은 220억 달러에서 320억 달러로 늘었다. 2027년 생산의 75% 이상이 이미 확정됐다.
더 중요한 건 이 계약들이 2030년까지 예상 매출의 35% 이상을 커버한다는 점이다. 계약의 4분의 3에는 가격 상한과 하한 프레임이 들어 있다.
최종 수요에는 문제가 없다.
그럼 투자자들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흥미롭게도 AI 사업 자체를 의심하는 게 아니다. 데이터센터 사업성에는 다들 동의한다.
진짜 걱정은 다른 곳에 있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이 자본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면서, 자본 자체가 부족해지는 것이다. 알파벳이 20년 만에 800억 달러 증자에 나섰다. 캐펙스가 잉여현금흐름의 82%, 내년이면 94%에 달한다.
돈이 한 곳으로 몰리면 돈값이 오른다. 그게 금리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이 항복하기 전에 자금 시장이 먼저 비명을 지를 수 있다는 것. 그게 지금 시장이 품은 공포의 실체다.
역사가 이 두려움에 근거를 준다.
1869년 대륙횡단철도가 완공됐다. 미국을 하나로 묶은 혁명이었다. 그런데 4년 뒤 공황이 왔다. 방아쇠는 철도 수요 감소가 아니었다. 제이 쿡 앤 컴퍼니라는 철도 금융사의 파산이었다.
철도는 진짜였다. 다만 그걸 떠받치던 돈이 먼저 끊겼다.
1990년대 광섬유도 그렇다. 인터넷 수요 예측 자체는 맞았다. 다만 10년 빨랐다. 글로벌크로싱과 월드컴이 빚으로 깔아놓은 케이블은 결국 2010년대에 전부 쓰였다. 기술은 맞았고 자금 구조가 틀렸다.
그래서 지금은 중력과 부력의 속도 싸움이다.
금리는 중력이다. 주가를 아래로 당긴다. 성장은 부력이다. 위로 띄운다.
둘 중 어느 쪽이 빠른가. 그게 전부다.
금리 인상 속도가 AI 성장보다 빠르다고 판단한다면, 팔고 나가면 된다. 합리적인 선택이다.
반대로 AI 성장이 금리를 이기거나, 금리 인상이 추세적으로 이어지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면 버티면 된다.
여기에 정답은 없다. 각자의 판단과 각자의 책임만 있을 뿐이다.
다만 규모를 한번 생각해보자.
2027년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캐펙스 총합은 미국의 국방비 예산을 넘어선다.
세계 최강대국이 군대에 쓰는 돈보다, 몇 개 기업이 AI 인프라에 쓰는 돈이 더 크다는 뜻이다.
인류 역사상 이런 규모의 민간 인프라 프로젝트는 없었다. 대륙횡단철도도, 광섬유망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만큼 이 사이클은 크고, 그만큼 소음도 크다.
큰 사이클의 후반부는 언제나 공포로 가득하다.
1987년 블랙먼데이 때 시장은 하루에 22% 빠졌다. 대공황의 재현이라는 말이 돌았다. 그런데 1년 만에 회복됐다. 1929년과 달랐던 건 통화당국의 대응이었다.
폭락이 왔을 때 그것이 1929년인지 1987년인지는, 그 순간에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다.
무엇이 진짜 위험인지 정확히 아는 것.
재고가 쌓이는지가 아니라, 신용 스프레드가 벌어지는지를 봐야 한다. 주문서가 줄어드는지가 아니라, 그 주문을 떠받치는 돈이 어디서 오는지를 봐야 한다.
공포의 정체를 알면 공포는 관리할 수 있는 변수가 된다.
AI처럼 거대한 사이클의 후반부는, 두려움을 극복한 자만이 수익을 가져간다.
두려움이 없어서가 아니다. 두려움의 정체를 알기 때문에 버틸 수 있는 것이다.
중력은 분명히 작동하고 있다. 다만 부력도 그렇다.
어느 쪽이 빠른지, 그 경주를 지켜보는 중이다.
-10월 14일 아침 아신 이형수
[중력과 부력 사이 낀 주가, 이제는 속도 싸움] 마이크론이 역대급 실적을 냈다.
IT의 신 이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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