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장은 왜 하필 오늘 조정을 선택했을까? 그리고 다시 상승할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시장의 조정이 EPS의 하락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아니면 멀티플의 조정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시장은 왜 하필 오늘 이렇게 하락했을까요?
사실 어제와 오늘 사이에 기업들의 본질적인 가치가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AI에 대한 투자가 하루아침에 줄어든 것도 아니고, 반도체 기업들의 이익 전망이 갑자기 무너진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오늘 하루 실질금리가 급등하면서 모든 자산의 적정가치를 다시 계산해야 하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시장의 조정에는 반드시 그날이어야 할 이유가 존재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흔히 주가가 크게 하락하면 그날 발생한 사건에서 원인을 찾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하루의 사건보다 그 이전부터 쌓여온 기대와 불안인 경우가 많습니다.
상승하는 동안에는 좋은 뉴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조정이 시작되면 똑같은 뉴스에서도 나쁜 이유를 찾아냅니다. 중요한 것은 뉴스 자체가 아니라 그 뉴스를 받아들이는 시장의 상태일지도 모릅니다.
지난 몇 달 동안 AI 인프라 기업들의 EPS 추정치는 가파르게 상향됐고, 주가 역시 그 속도를 따라 빠르게 상승했습니다. 기업의 이익이 좋아지니 주가가 상승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시장은 현재의 이익뿐만 아니라 미래에 실현될 성장까지 조금 더 빠르게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좋은 실적만으로는 부족해졌습니다. 좋은 실적이 나와도 더 좋은 전망이 필요해졌고, 높아진 주가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더 강력한 성장의 증거가 필요해졌습니다.
실제로 최근 삼성전자의 실적 발표가 중요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이 나빠진 것이 아니라, 좋은 기업에 얼마의 가격을 지불할 것인지 시장의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최근 미국 장기금리의 상승과 높은 유가는 시장의 부담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조정을 단순히 금리 상승에 따른 디레이팅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금리는 이미 높은 수준에 있었고, 최근에는 오히려 상승세가 일부 진정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금리 자체의 변화보다는 금리가 높은 환경에서 투자자들이 감수할 수 있는 위험의 크기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높은 금리를 견디면서도 시장이 상승할 수 있었던 이유는 EPS 성장에 대한 확신이 그보다 강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EPS 성장에 대한 확신도 일시적인 피로감이 생길 수 있습니다.
결국 오늘이라는 날짜가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이미 조정에 취약해져 있던 시장에 여러 트리거가 같은 방향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시장에는 특성이 있는데, 누군가 먼저 팔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은 새로운 악재가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주가가 하락하면 또 다른 사람은 자신이 모르는 악재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합니다.
그렇게 처음에는 개별적인 이유로 시작된 매도가 어느 순간 시장 전체의 위험 회피로 확산됩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조정은 어디까지 이어질까요?
저는 이 질문보다 지금 하락한 주가가 앞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 정당화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가가 먼저 하락한 뒤 EPS 추정치까지 하향되기 시작한다면 이번 조정은 단순한 멀티플 조정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대로 EPS 추정치가 유지되거나 오히려 상향되는 가운데 주가만 하락한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밸류에이션 부담은 낮아집니다.
앞으로는 EPS의 방향과 함께 시장이 어느 수준의 멀티플을 다시 받아들이기 시작하는지를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반등은 언제 나타날까요?
이번 주 미국 소비자물가지수가 예상보다 안정적으로 발표되거나, TSMC를 비롯한 반도체 기업들이 향후 AI 투자와 수요에 대한 확신을 다시 높여줄 수 있습니다. 중동의 긴장이 완화되면서 유가가 안정되거나, 외국인의 매도 강도가 약해지는 것도 반등의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저는 반등을 위해 반드시 아주 좋은 뉴스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장의 조정이 새로운 악재 때문이라기보다 기존의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면서 시작됐다면, 반등도 반드시 새로운 호재에서 시작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정이 시작되기 전에는 좋은 실적에도 주가가 하락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평범한 실적에도 주가가 상승하는 변화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때가 시장의 심리가 다시 바뀌는 중요한 순간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아직 이번 조정을 AI 산업의 성장 논리가 훼손되면서 발생한 구조적인 하락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로서는 높은 기대와 밸류에이션을 시장이 다시 점검하는 과정에 더 가깝다는 판단입니다.
하지만 투자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끝까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바꿔야 할 조건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PS가 꺾이기 시작하면 성장에 대한 가정을 수정해야 하고, EPS가 견조한데도 멀티플이 계속 하락한다면 시장이 요구하는 위험 프리미엄이 구조적으로 달라진 것은 아닌지 다시 살펴봐야 합니다.
반대로 이익의 방향이 유지되고 수급이 안정되기 시작한다면, 이번 조정은 다음 상승을 위한 가격의 재정렬 과정으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은 반등의 시점이 아니라, 시장이 다시 상승할 수 있는 조건이자 우리의 심리의 재조정이 아닐까요.
오늘의 하락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 시장은 왜 하필 오늘 조정을 선택했을까? 그리고 다시 상승할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시장의 조정이 EPS의 하락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아니면 멀티플의 조정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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