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과의사 출신 주식투자자로 유명한 ‘시골의사’ 박경철 선생님...
코스피 급락이 심해지던 지난주 10/14(수)부터 약 2년만에 다시 블로그 글을 쓰고 계신데, 10/17(토)에 업로드된 최신 글 「형세와 기세」가 최근 시장에 대한 관점을 담고 있어 내용을 정리해봅니다.
1) 1편: 종목을 고르기 전에 시장부터 봐야 한다
- 좋은 배도 썰물에는 움직이기 어렵듯, 좋은 기업도 시장 환경이 나쁘면 주가가 떨어질 수 있음
- “어떤 종목을 살까?”에 앞서 “지금 투자하기 좋은 때인가?”를 살펴야 함
2) 2편: 분석이 맞아도 돈을 못 벌 수 있다
- 지나고 나면 성공과 실패의 이유가 보이지만, 당시에는 결과를 알 수 없음
- 투자에는 기업 분석뿐 아니라 운과 시장 환경도 영향을 주며, 남의 성공 사례를 따라 해도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함
→ 기업을 잘 아는 것과 함께, 그 기업에 돈이 들어올 환경인지도 살펴봐야 한다는 의미
→ 시골의사 블로그 글 원문
형세(形勢)와 기세(氣勢) - 1. 들어가는 글 ..
시골의사 | 2026. 10. 17. 13:40
하늘을 나는 용은 구름을 타고, 날아오르는 뱀은 안개 속을 노닌다. 그런데 구름이 걷히고 안개가 개면 용과 뱀도 땅바닥의 지렁이나 개미와 다를 바가 없다. 타고 있던 것을 잃었기 때문이다
(飛龍乘雲 騰蛇遊霧 雲罷霧霽 而龍蛇與螾蟻同矣 則失其所乘也).
한비자의 「난세(難勢)」편에 실려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용을 띄우는 것은 구름이며, 용의 비늘과 발톱이 아무리 훌륭해도 구름이 없으면 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즉 날고 못 나는 것을 가르는 것은 타고난 재주가 아니라 올라탄 자리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보통 ‘형세(形勢)’라고 부릅니다.
형(形)은 지금 놓여 있는 모양이고, 세(勢)는 그 모양이 만들어내는 흐름입니다.
제국/국가의 흥망에도, 사람의 인생에도 형세가 있고, 제가 오랫동안 지켜본 주식시장에도 분명히 형세가 있습니다.
투자를 하는 많은 사람들은 늘 종목을 궁금해합니다.
“지금 삼성전자를 사야/팔아야 하느냐?”
저는 이 질문이 순서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삼성전자를 살지/팔지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지금이 싸울 때인가’라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종목도 형세가 나쁘면 떨어집니다. 평범한 종목도 형세가 좋으면 오릅니다.
밀물이 들어오면 나무토막도 물에 뜨고, 썰물이 빠지면 좋은 배도 갯벌에 주저앉습니다.
이 글은 그 형세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형세가 맞을 때 망설이지 않고 밀고 나가는 힘, ‘기세(氣勢)’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 이어서.
2026.10월 시골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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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세(形勢)와 기세(氣勢)2 - 성호 이익 선생의 서재에서 ..
시골의사 | 2026. 10. 17. 14:14
2편 부터는 문체를 바꿉니다. 주제 자체가 한담처럼 늘어지기가 적당하지 않아서 2편부터 온기를 뺀 문체로 바꾸겠습니다.
독사료성패(讀史料成敗)
조선후기 실학자 이익(1681~1763)은 평생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둘째 형 이잠이 당쟁에 휘말려 세상을 떠난 뒤, 안산의 바닷가 마을에 머물며 책을 읽고 떠오르는 생각을 적으며 소일했다.
그렇게 쌓인 메모가 3천 쪽이 넘는 ‘성호사설(星湖僿說)’인데, 그 책 권20 경사문(經史門)에〈독사료성패(讀史料成敗)〉라는 짧은 글이 있다.
역사책을 읽으며 일의 성패를 헤아린다는 뜻이다. (勝敗가 아니다)
글은 송나라 학자 정이천의 독서법에서 시작한다. 정이천은 역사책을 절반쯤 읽으면 책을 덮고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이 일이 어떻게 끝날지, 누가 이기고 누가 질지를 먼저 짐작한 뒤에 다시 펼쳐 읽었다.
선생도 이 방법을 따라 해 보았다.
그런데 결과가 묘했다. 이미 쓰인 역사책 안에서 성패를 짐작하면 사실과 이치가 들어맞는 곳이 많았고 당연히 그리되어야 했다. 그러나 자기가 살면서 직접 목격한 일들에 대어 보면 열에 여덟아홉은 맞지 않았다.
여기에 대한 선생의 답은 날카롭다.
역사책은 성패가 결정된 뒤에 쓰인다. 쓰는 사람은 결과에 맞추어 원인을 고른다. 이긴 쪽의 계책은 묘책이 되고, 진 쪽의 계책은 어리석은 것이 된다. 원치는 묘책이 끝내 실패하기도 했고, 졸렬한 계획이 우연히 맞아떨어지기도 했고, 선한 사람 속에도 악이 있었고, 악한 사람 속에도 선이 있었겠지만 그런 것은 책에 남지 않는다.
그래서 이익은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余故曰 天下之事 所值之勢爲上 幸不幸次之 是非爲下 (나는 말한다. 천하의 일은 만난 바의 세(勢)가 으뜸이요 다행과 불행이 그 다음이며, 옳고 그름은 맨 아래다)
25년전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한동안 책을 덮었다. 두개골이 흔들렸다.
내 인생에 읽은 구절중 그야말로 심장을 강타한 몇개의 구절 중 하나다.
철저한 성리학자였던 성호 이익선생이, 유학이 그토록 받드는 시비(是非), 곧 옳고 그름을 세상일을 결정하는 것 가운데 맨 아래에 두었다. 그 위에 운이 있고, 가장 위에 세가 있다는 것이다.
옳은 사람이 이기는 것도 아니고, 운 좋은 사람이 이기는 것도 아니다. 세를 만난 사람이 이긴다.
특히 ‘소치지세(所值之勢)’라는 네 글자는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치(值)는 ‘만나다’, ‘마주치다’라는 뜻이다. 성호는 그냥 ‘세’라고 하지 않고 ‘만난 세’라고 했다. 세는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만나는 것이다.
이 한 글자에 이 글 전체가 들어 있다.
세를 만드는 것은 내 힘 밖에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세를 알아보는 것, 세를 만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 그리고 세를 만났을 때 올라타는 것뿐이다.
시비는 맨 아래다 — 옳은 분석이 무조건 돈을 벌지 못하는 이유
조금 억지같지만 성호의 세 층위를 시장에 그대로 옮겨 보자.
시비(是非)는 투자자에게 ‘내 판단이 옳은가’의 문제다. 이 회사의 기술이 뛰어난가, 경영진이 정직한가, 재무제표가 탄탄한가, 내 분석과 논리가 맞는가. 대부분의 투자 공부는 여기에 바쳐진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옳으면 돈을 번다고 믿는다. 좋은 회사를 고르면 주가는 결국 따라온다고.
그런데 성호는 이것을 맨 아래에 두었다.
나는 시장에서 이 말이 맞는 장면을 수없이 보았다. 분석이 완벽했던 종목이 몇 해 동안 제자리를 걷는 것, 누가 봐도 엉터리인 회사가 테마를 타고 몇 배씩 오르는 것.
좋은 회사와 좋은 주식은 같은 말이 아니다. 좋은 회사가 좋은 주식이 되려면 그 회사가 좋은 세를 만나야 한다. 행불행(幸不幸)은 운이다. 산 다음 날 터진 호재, 판 다음 날 날아든 악재, 우연히 맞아떨어진 타이밍. 운은 분명히 있고, 시비보다 힘이 세다. 옳은 판단을 하고도 운이 나빠 잃을 수 있고, 엉터리 판단을 하고도 운이 좋아 벌 수 있다.
하지만 운에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반복되지 않는다.
운으로 번 돈은 대개 운으로 나간다.
그리고 맨 위에 세가 있다. 금리가 내리고 돈이 풀리고 기업 이익이 늘어나는 세를 만나면, 평범한 판단도 수익이 되고 작은 불운은 덮인다. 금리가 오르고 돈이 마르는 세를 만나면, 탁월한 분석도 손실이 되고 작은 불운이 큰 재앙이 된다.
불과 작년 초 대비 현재 반도체회사들의 처지와 입지 역시 마찬가지다.
시비와 행불행은 세라는 그릇 안에서만 힘을 쓴다.
성호가 짚어낸 역사책의 함정처럼 결과가 나온 뒤에 쓰인 해설은 언제나 그럴듯하다. 크게 번 사람의 논리는 묘책처럼 보이고, 크게 잃은 사람의 논리는 어리석어 보인다.
경제 뉴스의 시황 해설과 투자 성공담은 모두 성패가 결정된 뒤에 쓰인 역사책이다.
그 안에서 읽으면 이치가 다 맞는다. 하지만 결과를 모르는 오늘의 시장에 대어 보면 열에 여덟아홉은 맞지 않는다. 그래서 남이 번 종목을 따라 사는 사람은 대개 그 사람이 만났던 세는 만나지 못한 채, 시비만 흉내 내다 끝난다.
이것이 이 글의 출발점이다. 투자자가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이 종목이 옳은가’가 아니라
‘나는 지금 어떤 세를 만나고 있는가’이다.
2026.10월. 시골의사.
🔗 형세와 기세 1편 🔗 형세와 기세 2편 🔍 지엘리서치
